샤킬 오닐(1972년 3월 6일 미국 뉴저지 주 뉴어크 출생)은 전 미국 프로 농구 선수로, "샤크"라는 별명을 가진 센터로 활약한 선수입니다.
샤킬 오닐은 1992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올랜도 매직에 지명되어 신인 시즌 동안 올랜도 매직,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마이애미 히트, 피닉스 선즈,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보스턴 셀틱스에서 뛰었습니다. NBA 정규 시즌 MVP 3회, NBA 파이널 MVP 3회, NBA 올스타 15회, 올스타전 MVP 3회, NBA 퍼스트팀 올스타 8회, NBA 세컨드팀 올스타 4회, NBA 득점왕 2회에 선정되었습니다. 1996년, 샤킬 오닐은 NBA 50대 슈퍼스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샤킬 오닐은 1972년 3월 6일 뉴저지 주 뉴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샤킬"이라는 이름은 그의 친아버지 조셉 토니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오닐이 6학년이 되던 해 해리슨은 독일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오닐과 그의 어머니도 함께 독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1년 후 텍사스주 샌안토니오로 이사했고, 오닐은 서독에서 돌아와 샌안토니오의 콜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콜 고등학교에서 보낸 두 시즌 동안 오닐은 68승 1패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1990년, 18세의 나이에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LSU) 경영학과에 입학한 오닐은 농구 대표팀에 합류했고, 2000년에는 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LSU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1992년 NBA 드래프트에서 올랜도 매직은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오닐을 지명했습니다.
루키 시즌에 오닐은 경기당 평균 23.4득점, 13.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매직이 이전 시즌보다 20승을 더 거두는 데 기여했고, 1992-93시즌 'NBA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996년 여름, 오닐은 자유계약선수가 되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7년 1억 2,00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하고 공식적으로 레이커스에 입단했습니다.
1999-00시즌 오닐은 경기당 평균 38점 16.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파이널 MVP를 수상했습니다. 1998년 조던 이후 처음으로 한 시즌에 MVP를 모두 수상한 선수가 된 오닐은 이 시즌을 자신의 커리어 최고의 시즌으로 기록했습니다.
2001-02시즌 오닐은 파이널에서 네츠를 상대로 경기당 평균 36.3점 12.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레이커스를 또 한 번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3연패는 오닐 커리어의 정점이었고, NBA 팀들은 유명한 '핵 더 샤크' 전술을 비롯해 코트 공수 양면에서 오닐의 위력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닐은 3년 동안 플레이오프에서 마이클 조던과 마찬가지로 3년 연속 파이널 최우수선수(MVP)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2003-04시즌, 레이커스는 칼 말론과 게리 페이튼을 영입하여 리그 최고의 판타지 팀으로 불리며 다시 한 번 파이널에 진출했습니다. 오닐이 더블 월러스 수비를 상대로 26.6점 10.8리바운드 1.6어시스트 야투율 63%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1-4로 패했습니다. 오닐과 코비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레이커스와 오닐의 협상이 실패로 끝나자 '샤크'는 마이애미로 이적했고, 레이커스의 '오닐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2004년 7월 14일, 레이커스는샤킬 오닐을 브라이언 그랜트, 라마 오덤, 2006년 1라운드 지명권, 2007년 2라운드 지명권과 함께 마이애미 히트로 트레이드했습니다. 마이애미 히트로 트레이드된 후 오닐은 레이커스 시절의 등번호 34번에서 올랜도 매직 시절의 등번호 32번으로 등번호를 다시 바꿨습니다.
2005-06 시즌에는 게리 페이튼, 알론조 무닝, 앤써니 워커, 제이슨 윌리엄스 등의 선수를 영입하며 피스톤스를 플레이오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오닐의 컨디션이 떨어졌지만 결국 피스톤스를 4승 2패로 제압하고 히트를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파이널로 이끌었습니다.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파이널에서 0-2로 패했지만 결국 4연승으로 반격에 성공하며 히트 사상 첫 NBA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오닐은 또한 네 번째 우승 반지를 획득했습니다.
2007-08 시즌 동안 고관절 부상과 왼쪽 무릎 통증은 오닐의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즌 도중 오닐은 더 강한 팀으로 트레이드되기를 원했고, 팀은 오닐을 숀 매리언과 마커스 뱅크스와 맞트레이드하며 오닐은 피닉스 선즈에 합류하게 됩니다.
2009-10시즌, 캐벌리어스는 르브론 제임스의 인사이드 게임을 돕기 위해 오닐과 계약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가 시작될 무렵 오닐은 손가락 부상으로 1라운드에 결장했습니다. 캐벌리어스가 불스를 4-1로 꺾은 후 제임스는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파열되어 진통제를 맞으며 경기를 치렀고, 결국 셀틱스에 2승 4패로 패하며 플레이오프에서 또다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2010년 8월 4일, 보스턴 셀틱스는 오닐과 2년 280만 달러의 기본 연봉을 받고 입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셀틱스에서 시즌을 보내는 동안 오닐은 37경기에 출전해 경기당 평균 20.3분 동안 9.2점 4.8리바운드를 기록했는데, 이는 모두 커리어 최저 기록이었으며 플레이오프에서는 단 2경기에만 출전했습니다.
2011년 5월 9일, 오닐은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에서 4분을 뛰며 득점 없이 파울 2개를 기록했습니다.
2011년 6월 2일, 샤킬 오닐은 트위터를 통해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샤킬 오닐은 NBA 커리어에서 경기당 평균 23.7점, 10.9리바운드, 2.3스틸을 기록했으며, 통산 28,596점, 13,099리바운드, 58.2%의 야투율을 기록하며 NBA에서 가장 강력한 센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13년 4월 3일, 레이커스는 매버릭스와의 홈 경기 하프타임에 샤킬 오닐의 등번호 34번 영구결번 은퇴식을 가졌습니다.
2016년 4월 4일, 샤킬 오닐은 2016 나이스미스 메모리얼 농구 명예의 전당에 공식 헌액되었습니다.
ㅈ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