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했던 NBA선수 로버트 호리(Robert Horry)
1970년 8월 25일 미국 메릴랜드주 하퍼드 카운티에서 태어난 로버트 호리는 전 미국 프로 농구 선수로 스몰포워드/파워포워드로 활약했으며 "빅쇼트 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버트 호리는 1992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1순위로 휴스턴 로케츠에 지명되었습니다. 리그 진출 이후 16 시즌 연속 호리가 속한 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모두 1라운드 이상을 통과했습니다.
로버트 호리는 통산 7번의 NBA 우승을 차지했으며, NBA 파이널 역사상 가장 많은 3점슛(56개)을 성공시킨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롤 플레이어 중 한 명입니다.
로버트 호리는 2008 년 이후 NBA에서 뛰지 않았고 2009 년 6 월 5 일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하여 16 년간의 NBA 경력을 끝냈습니다.
1992년 NBA 드래프트에서 호리는 1라운드 11순위로 휴스턴 로케츠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1992-93 루키 시즌 동안 호리는 경기당 평균 10.1득점 5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NBA 세컨드 팀과 올해의 신인 선수에 선정되었습니다.
1995년 5월 22일, 휴스턴 로케츠와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1차전에서 경기 종료 6.5초를 남기고 로버트 호리는 점프슛을 성공시켜 로케츠가 94-93으로 근소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994-95 NBA 파이널 2차전, 올랜도 매직과의 경기에서 호리는 NBA 파이널 기록인 7개의 스틸을 기록했습니다. 1995년 6월 11일, 파이널 3차전, 휴스턴 로케츠와 올랜도 매직과의 경기에서 로케츠가 공을 가지고 있었고, 동점인 상황에서 14초를 남기고 시계가 흘러가는 하킴 올라주원은 공을 호리에게 넘겼고, 호리는 호레이스 그랜트의 수비를 뚫고 3점 슛을 성공시키며 106-103으로 승리, 시리즈 전적 3-0으로 앞서며 결국 매직을 꺾고 NBA 2연패에 성공했습니다.
1995-96 시즌 호리는 1995년 11월 16일 미네소타 울브스와의 경기에서 3점 슛 8개로 커리어-하이인 40점을 기록했고, 1996년 2월 22일 캐벌리어스와의 경기에서는 3점 슛 9개를 성공시키며 시즌 총 142개의 3점 슛을 넣었습니다. 그 시즌 그는 경기당 평균 1.63개의 스틸을 기록해 NBA 16위에 올랐습니다 [6].
1996년 8월 19일, 호리는 팀 동료인 샘 카셀, 마크 브라이언트, 처키 브라운과 함께 찰스 바클리와 트레이드되었습니다.
1997년 호리는 대니 엔젤 감독과의 코트 내 말다툼 끝에 감독 얼굴에 수건을 던져 출장 정지를 당했습니다.
1997년 1월, 로버트 호리는 덩크슛왕 세드릭 세발로스와 맞바꾸는 조건으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1997년 5월 6일, 서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2차전에서 호리는 유타 재즈와의 경기에서 속 3점 슛 7개를 성공시키며 플레이오프 단일 경기 최다 연속 3점 슛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2001년 6월 10일, 아이버슨이 이끄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NBA 파이널 3차전에서 레이커스의 스타 센터 샤킬 오닐은 6개의 파울을 범하며 퇴장당했습니다. 호리는 경기 종료 47.1초를 남기고 3점슛을 성공시켜 레이커스가 4점 차로 앞서며 승리를 확정 지었습니다.
2002년 4월 28일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와의 서부 컨퍼런스 1라운드 3차전, 경기 종료 10.2초를 남기고 2점차로 뒤지고 있던 레이커스는 코비 브라이언트가 루벤 패터슨에게 돌파를 시도한 뒤 호리에게 공을 넘겼고, 호리는 3점포로 경기를 마무리했습니다.
2001-02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4차전에서는 시리즈 전적 1-2로 뒤지던 레이커스가 하프타임에 24점까지 뒤졌지만 경기 종료 11초를 남기고 97-99로 따라붙는 등 힘든 경기를 펼쳤습니다. 결국 레이커스는 시리즈에서 킹스를 탈락시키고 NBA 파이널에서 뉴저지 네츠를 4-0으로 완파하고 NBA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2-03 시즌 서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스퍼스와 레이커스는 2승 2패로 동률을 이뤘고, 홈에서 열린 5차전에서 스퍼스가 96-94로 앞서던 중 호리가 막판 3점 슛을 놓치며 3연패에 성공한 레이커스를 역전시켰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호리는 레이커스에서 시도한 38개의 3점슛 중 36개를 놓쳤고, 레이커스는 "나이를 보여줬다"라고 판단한 호리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달 후인 2003년 7월, 스퍼스는 호리와 재계약을 체결했습니다.
2002-03 시즌이 끝날 무렵 호리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고 휴스턴에 있는 가족과 함께 디펜딩 챔피언 샌 안토니오 스퍼스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레이커스 시절 호리는 팀의 핵심 공격 자원이었지만, 샌안토니오에서 그로포비치 감독은 호리의 출전 시간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04-05 시즌 스퍼스는 파이널에 진출했고, 결국 2005 NBA 파이널에서 우승했습니다. 호리는 플레이오프에서 85개의 슛 중 38개를 성공시키며 팀 승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의 파이널 5차전에서 호리는 1, 3 쿼터에 단 3 득점에 그친 뒤 4 쿼터와 연장전에서 21점을 폭발시켰습니다. 호리의 버저와 함께 터진 3점 슛으로 스퍼스는 피스톤스에 96-95로 근소한 승리를 거두며 시리즈 전적 3-2로 앞서게 되었습니다. 스퍼스는 시리즈 7차전에서 승리하며 역사상 세 번째로 NBA 우승을 차지했고 호리는 자신의 여섯 번째 우승 반지를 끼게 되었습니다. 호리는 존 실리와 함께 세 팀에서 NBA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두 선수가 되었습니다.
2007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스퍼스가 덴버 너기츠에 3점 차 승리를 거둔 뒤 파이널에서 마커스 캠비의 끈질긴 수비를 앞세워 캐벌리어스를 스윕 하면서 호리는 통산 7번째 우승 반지를 획득했습니다.
2008년 5월 14일, 로버트 호리는 호네츠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 출전한 후 자신의 플레이오프 통산 출장 기록을 238경기로 늘렸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카림 압둘 자바를 제치고 호리는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플레이오프 통산 244경기에 출전한 호리는 데릭 피셔(통산 250경기)에 이어 NBA에서 2위에 올라있습니다. 또한 플레이오프에서 500 어시스트, 200 리바운드, 200 스틸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2007-08 시즌 이후 로버트 호리는 어느 팀에서도 뛰지 않았습니다. 2009년 6월 5일, 호리는 복귀는 더 이상 최선의 선택이 아니며 코치나 농구 아나운서로서의 향후 커리어를 목표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